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체스크 롬스키 (문단 편집) === [[엘 파실 독립정부]] 창립 === 우주력 799년 5월, [[바라트 화약]]으로 [[자유행성동맹]]은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했다. 화약에 따라 보유한 전함과 우주항모를 자침하고 거액의 안전보장세를 제국에 바치며 동맹 시민 내의 반제국 운동을 탄압하게 되었다. 당시 엘 파실 성계 정부의 주석이었던 프란체스크 롬스키는 제국에 굴복한 동맹에 분노하여 우주력 799년 8월 13일 동맹 탈퇴 및 독립을 선언했다. 그러나 열정에 이끌려 급하게 한 독립인지라 엘 파실 자치정부는 아무런 힘도 없었다. 군사력은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준이었으며[* 있다 쳐도 엘 파실 경비함대가 고작이었을텐데 엘 파실 경비함대는 엘 파실 전투 당시에도 고작 1,000척 수준이었다. 저 정도면 그냥 동맹군 선에서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.] 다른 동맹 성계들의 탈퇴 러시가 벌어지지 않아 자치정부는 고립되었다.[* 여기다가 엘 파실 자체도 그렇게 역량이 대단하지 않은 행성이라는 것도 문제였다. 엘 파실의 인구는 300만명에 동맹에서는 변방중의 변방에 존재해 있었다. 동맹의 수도성인 하이네센의 인구가 10억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정말 촌뜨기 시골 변방 하나가 중앙정부를 상대로 반기를 든 셈이었다.] [[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]]는 현재 우주에 있는 세력들을 정리하며 엘 파실 독립정부에 대해서는 갓난아이와 마찬가지로 무력하다고 평가했을 정도였다. 자치정부는 이 고립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대변인을 통해 행방이 묘연한 [[양 웬리]] 원수가 엘 파실에 내방할 것을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다. 그런데 우주력 799년 11월, 카이저 [[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]]이 제국의 불명예를 무릅쓰고 [[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]]의 진상을 공표하고 동맹정부에 선전포고를 하자 상황이 반전되었다. 카이저의 선전포고로 동맹으로 복귀할 길이 사라진 양 웬리는 자금이 떨어지자 차선책으로 엘 파실 독립정부로 망명했다.[* 물론 양 웬리는 합류할때까지도 내키진 않아했다. 아직 오히려 막가파로 분리부터 해나오고 본 엘 파실 독립정부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.] 우주력 799년 12월 9일 양 원수가 정식으로 엘 파실에 망명하자 롬스키는 기자들과 함께 그를 환영했다. 독립정부 입장에서는 양 비정규함대가 합류하면서 군사력이 비약적으로 증강되었을 뿐만 아니라, 동맹 최고 간부가 독립정부야말로 [[민주공화정]]을 지향하는 정통 정권이라고 인정한 것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. 롬스키는 이 사실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[[언론]]을 끌어들여 양 원수의 엘 파실 합류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. 양 원수가 합류하면서 고무된 롬스키는 내친김에 새로운 정부의 명칭으로 '''자유행성동맹 정통정부'''를 제안했다. 그러나 양 웬리가 국가정통성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황무지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좋겠다고 완곡히 반대의견을 냈고 [[더스티 아텐보로]]가 양 웬리의 의견에 찬동하면서 [[은하제국 정통정부]]라는 나쁜 사례를 거론하자 롬스키도 한 발 물러섰다. 그리고는 새로운 국호, 국기, 국가,,,國歌,,,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. 그리고 혁명군 조직화에 착수하여 스스로는 국가원수이자 군사위원장을 겸임하고 사령관으로는 양 원수, 참모장으로는 [[메르카츠]] 상급대장, 후방근무부장으로 [[카젤느]] 중장을 임명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